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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26) 해옥주첨(海屋籌添), 을사늑약(乙巳勒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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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4-11-18 12:29 조회 14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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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늑약 120년과 덕수궁 주련(柱聯) 글씨의 주인공들
-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세월(桑田碧海)’보다 긴 시간 흘러도
- 역사는 남는 것, 을사오적의 오명은 더욱 뚜렷하게
해옥주첨(海屋籌添)과 덕수궁 중화전 기둥에 붙어있는 을사오적중 한명인 박제순의 시. 해옥주첨은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하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장수를 기원할때 쓴다. 역사는 해옥주첨처럼 긴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으며, 오명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진=이형로) 

덕수궁 궁지기로 근무한지 어느덧 12년이다. 그동안 관람객에게 여러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건물의 이름 즉 현판의 의미를 질문한 사람은 딱 한명,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중화전(中和殿)의 뜻을 물어왔다. 자금성에도 같은 이름의 전(殿)이 있어 필자가 그 뜻을 아는가 테스트한 것 같았다. 석어당(昔御堂)•즉조당(即阼堂)•준명당(浚眀堂) 등의 주련(柱聯) 내용은 건성으로 물어온 경우가 서너 번, 그리고 중화전 기둥에 붙어있는 단오첩의 경우는 두어 번 있었다. 

중화전 외부에는 주련이 없고 내부 기둥에 시를 직접 써서 붙인 종이가 15장 있다. 뒷 기둥에 붙은 1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임금이 용상에서 볼 수있는 기둥에 붙였다. 주로 대련으로 되어있는 일반적인 주련이 아니라 종이에 시 한 수씩을 써 붙여 놓은 것이다. 

오랜 세월을 겪는 동안 종이가 삭아 떨어져나가 원문의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2007년 문화유산청(옛 문화재청)에서 5대궁과 종묘의 현판과 주련을 전수조사 출판해서 다행히 자료가 남아있다. 중화전은 1904년 대화재로 1906년 재건됐으니 1905년 단오날 신하들이 지어붙인 단오첩(端午帖)으로 신하들이 황제의 만수무강과 대한제국의 창대(昌大)함을 기원하며 지어 올린 축시(祝詩)다. 그 가운데 몇 편을 감상해보자. 

中和殿裏瑞烟濃(중화전리서연농, 중화전 속 상서로운 연무 짙으니)  
長命朱絲獻九重(장명주사헌구중, 장수의 붉은 실 구중에 바치리) 
(3,4연은 훼손) 

고종 황제의 장수를 축원하는 내용의 이 시를 지은 서긍순(徐肯淳)은 고종 27년(1890)에 문과에 급제해 광무연간에 규장각직학사를 역임했다. 

宮裏無楹不頌詩(궁리무영불송시, 궁궐 안엔 송축시 붙이지 않은 기둥없고) 
榴紅蒲綠年陰遲(류홍포록연음지, 석류 붉고 창포 푸르니 낮 그늘 더디구나) 
彤墀是日頒新䈉(동지시일반신삽, 궁전에는 이 날에 새 부채 내려주니) 
聖德如風□□□(성덕여풍, 황제의 성덕 바람과 같다, 뒷부분 3자 훼손) 

시를 지은 박제순(朴齊純, 1858~1916)은 대한제국 시절 외부대신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함으로써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한 사람으로 규탄받았다. 국권 피탈후 일제로부터 자작(子爵) 작위를 받았다. 

덕수궁 석어당의 현판. 고종 황제 당시 탁지부대신을 지내다 을사늑약후 일제에 자작 작위를 받은 김성근(金聲根)이 쓴 것이다. (사진=이형로)

'예전에 임금이 머물던 집'이란 뜻의 석어당(昔御堂)은 덕수궁의 유일한 2층집으로 선조 임금이 기거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그 모습 그대로 단청을 하지 않았다. 윗 현판의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는 탁지부대신을 지내다 합방후 일제에 자작 작위를 받은 김성근(金聲根,1835~1919)이 쓴 것이며, 아래 현판은 고종이 1905년에 쓴 친필 현판이다. 석어당 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주련이 붙어 있다. 

海屋籌添壽八百(해옥주첨수팔백, 해옥에 산가지 더하니 수명은 팔백 세요) 
瑤池桃熟歲三千(요지도숙세삼천, 요지에 복숭아 익으니 나이는 삼천 년일세) 

송나라 소식(蘇軾, 1037~1101, 東坡)이 지은 우언집인 '동파지림(東坡志林)'의 '삼로어(三老語)'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일찌기 세 노인이  만났는데 어떤 이가 그들의 나이를 물었다. 그러자 첫번째 노인은 '내 나이는 기억할 수없지만, 어릴 때 반고(盤古)와 친하게 지냈네'라 했다. 두번째 노인은 '바다가 뽕밭이 될 때마다 산가지(籌)를 하나씩 놓았는데, 지금까지 갖다놓은 산가지가 열 칸 집에 가득찼소'라 했다. 그러자 세번째 노인은 '내가 반도(蟠桃)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밑에 버렸는데, 지금은 곤륜산 높이만큼 쌓였소'라고 말했다." 

중국 신화에서 반고는 천지를 창조한 신이며, 요지는 곤륜산의 연못 이름이다. 불사의 선녀 서왕모가 이곳에 살며 반도라는 복숭아를 심었는데 열매가 익으려면 3000년이 걸린다고 전해진다. 

반고의 친구인 첫번째 노인과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수천번을 지켜본 두번째 노인도 나이가 좀(?) 많지만, 반도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높이만큼 쌓은 세번째 노인의 나이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첫째, 둘째 노인은 세번째 노인의 '뻥'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바닷가 집에 산가지를 더하다'라는 뜻의 '해옥주첨(海屋籌添)' 혹은 '해옥첨주(海屋籌添)'의 주인공인 두번째 노인이 결국엔 우승자가 됐다. 첫번째 노인의 '뻥'은 좀 모자라고 세번째 노인은 너무 세서 그런지 모를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장승업의 '삼로문년도'. 삼로문년은 해옥첨주에서 유래한 말이다. 

중국과 조선에서는 이 고사를 모티브로 '해옥첨주도'를 그렸는데 신선 대신 선학(仙鶴)이 산가지를 물고 해옥으로 날아오는 것으로 각색했다. 반고나 곤륜산보다 신선과 선학이 해옥과 더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그랬을 것이다. 

이 일화에서 '삼로문년'(三老問年, 세노인이 서로 나이를 묻다)이란 성어도 유래했다. 조선의 장승업은 '삼인문년(三人問年)'이란 제목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 아무튼 해옥주첨이란 성어는 장수를 축원하는 축수(祝壽)의 대명사가 되었다. 네글자가 길다고 생각하면 첨주를 빼고 해옥만 적기도 한다.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한 곳이라 전해지는 즉조당(即阼堂)의 주련은 이런 내용이다. 

九天閶閤開宮殿(구천창합개궁전, 구천의 큰 문이 이 궁궐에서 열리니) 
萬國衣冠拜冕旒(만국의관배면류, 만국의 사신들이 면류관에 절하네) 

창합문은 전설에 나오는 문으로 궁궐 정문을 상징하며 면류는 고종 황제를 가리킨다. 대한제국이 창대해지기를 기원하는 시로 대한제국 선포 당시 경운궁 정전인 즉조당에서 하늘의 창합문이 열리고, 만국의 사신들이 황제께 조회하는 광경을 표현했다. 이 구절은 당나라 왕유(王維, 701~772)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가 인질로 일본에 끌려가기전 유치원으로 사용했던 준명당(浚眀堂)에는 다음과 같은 주련이 붙어 있다. 

三百六旬春不老(삼백육순춘불로, 삼백육십일 늘 봄처럼 젊음을 유지하고) 
萬八千年慶長留(만팔천년경장류, 일만팔천 년 동안 경사가 길이 머무리라) 

임금이 늘 봄처럼 젊음을 유지하고 대한제국의 국운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2024년 11월17일 어제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2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정동길엔 여전히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고있다(2021년 12월6일 57회 칼럼 참조). 중화전 기둥에 붙어있는 15장 단오첩을 지은 이들은 모두 친일인사로 특히 박제순과 같은 을사오적도 있다. 석어당•즉조당•준명당 등의 주련도 그들이 썼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모두 제거하자는 이들도 있었으나, 보전하여 후손에게 알리는 것도 역사적 의의가 있어 그대로 놔두고 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권과 2권, 3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4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출처 : 인사이드비나(http://www.insidev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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